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
2007년 서울 아라리오 갤러리 개인전 이후 2년 만에 공시네가 개인전을 갖는다.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1, 2층을 그간의 신작들로 가득 메웠다. 약 1년간 인적이 드문 제주도의 작업실에서 철저하게 자연과 마주함으로 빚어낸 결과물들이다. 전시장은 제주도의 푸른 하늘, 나지막한 파도 소리, 쾌청한 공기까지도 코끝에 와 닿는 듯 시공을 뛰어넘어 감각적이다.
자연은 인간의 위대한 스승이라고 했던가. 대(大)스승과 함께 거처한 탓인지 그녀의 작업은 이전 작업에 비해 한층 성숙된 느낌이다. 하늘, 구름, 바다, 꽃, 말과 같은 자연적 소재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작품의 모티브를 찾는 작가의 방식 때문일 터. 때문에 작품은 보다 경쾌하고 밝아진 느낌이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의미는 오히려 한 층 더 진지하고 심오해졌다. 전시장 2층 한 벽면 모서리에 설치된 <choo-choo>은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담겨있는 작업이다. 네 개의 철로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하얀 꽃나무들은 제주도의 파란 하늘과 닿아있다. 네(四)개라는 숫자는 죽음(死)과 연결된다. 작가는 우연히 멈춰 선 기차의 창밖으로 환하게 핀 꽃나무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달리고 있는 기차와 그 사이에 핀 꽃나무의 관계를 삶과 죽음의 관계로 인식한다.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고 그 상처를 안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는 삶과 죽음이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우리는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작가는 인간의 내적인 고민과 갈등을 작가와 작품의 관계가 아닌 인간과 자연의 입장으로 스스럼없이 조우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치유하고 순환하는 자연의 가르침으로 풀어낸다. 자연의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여유롭고도 평화롭다.
작가는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사물들의 무수한 순간들을 드로잉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축적된 수권의 드로잉 북을 들여다보고 그 순간의 감정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리고 머릿속에 설정된 사물들의 관계를 실제 오브제로 빚어낸다. 작가는 소위 말하는 필이 꽂혀 작업을 하는 순간의 감정에 집착하는 작가는 아니다. 일상을 무심한 듯 기록하고 그 기억의 파편을 다시 대면했을 때 시간을 건너 잊었던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기도 하다. 그리고 각각의 사물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감정 이입’의 과정을 통해 예상치 못한 소통을 시도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마치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작가는 영화감독처럼 배우들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들의 관계와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또 그것을 가장 극적인 효과로 담아내기 위한 장치로 무대를 설정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조명. 빛과 어둠의 설정이다. 빛과 어둠은 2차원의 평면과 3차원의 오브제를 구분해 주기도 장치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을 향한 목적은 아니다. 일상적인 사물들이 다시 작가의 손에 의해 재창조되고 무대 위에 올라 조명을 받아 새로운 관계를 형성했을 때, 그것은 이미 내가 마주했던 사물이 아는 전혀 다른 대상이 된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가장 몰입하는 순간인 페인팅 작업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빛과 어둠 자연과 인간 치유와 상처와 같은 양가적 의미의 공존은 공시네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시리즈 <yestoday>는 언어적 유희적 통해 지난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작가의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 예스터데이(yestoday)는 지난날(yesterday)이 아니다. 바로 오늘 그 지난날을 끄집어내어 ‘지난 상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또 다시 지나갈 거야.’ 라며 토닥이며 위로하는 듯하다. 앞과 뒤가 핸들로만 이루어진 달리지 못하는 자전거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커다란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망설인다. 반면 나무는 태양과 대지로부터 영양분소를 공급받아 말없이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는다. 공시네는 인간의 끊임없는 내적 갈등을 자연으로부터 치유 받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명상, 치유, 그리고 어머니와 같은 절대적 위로의 존재와 같다.
2009.4.아트인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