深夜食堂


후덥지근한 긴긴 여름밤, 출출한 배와 쓸쓸한 마음을 채워줄 맛있는 책을 소개합니다. 밤 12시에 문을 여는 <심야식당>입니다.  찾아오는 손님은 문어모양소세지를 찾는 조폭 두목,  간장버터밥을 찾는 한물간 여가수, 계란말이를 찾는 여장남자 등 입니다. 음식에 담긴 그들 나름의 사연들이 지글지글 후룩후룩 아삭아삭 냠냠쩝쩝 맛있게 펼쳐집니다. 책을 덮으면 동네 포장마차라도 달려가야할 것 같은 몹쓸 식욕을 자극하는 책! 단, 다이어트중인 분들은 삼가하세요.

by missk | 2010/06/29 23:22 | ART | 트랙백 | 덧글(0)

[핫피플] 니콜라우스 샤프하우젠


“예술의 힘은 사회정치적 이슈를 던지는 것”

이번이 열 번째 한국 방문이라고 한다. 유럽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니콜라우스 샤프하우젠은 한국에 꽤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독일에서 태어나 현재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오가며 활동하는 그는 오는 9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제8회 미디어시티서울(9. 8~10. 17)에 클라라 킴(미국), 후미히코 수미토모(일본)와 함께 공동 큐레이터를 맡았다. 전시 총감독인 김선정과는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 특별전 때 만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아름다움만 보여주는 예술은 원하지 않는다”
2007년과 2009년 연속으로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커미셔너를 맡았던 샤프하우젠은 국가의 ‘대표 선수’들을 보여주는 그룹전이 아닌 한 작가의 개인전을 고집했다. “젊고 떠오르는 작가를 단순히 ‘소개’만 하는 전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작품 세계가 분명하고 영향력이 있는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죠.” 복잡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인간 존재의 유약함과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반영하는 기념비적 설치작품을 만드는 조각가 이자 켄즈켄(2007)과 가설적인 사회 모델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리암 길릭(2009)이 바로 그가 선택한 작가다. 그는 지역이나 국가라는 물리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영국 작가 리암 길릭을 독일관에 단독으로 내세운 것도 이 같은 그의 유연한 사고가 관철되어 있다. “베니스의 국가관 전시 성격이 꼭 한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역이나 국가 같은 경계에 얽매여서 전시를 만드는 것도 원하지 않고요. 이런 선택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행히 예전부터  독일관 자체가 국가라는 틀을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에 한국의 백남준이 전시했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예요. 저와 같은 세대의 유럽인은 각각의 국가 개념보다는 하나의 통합된 유럽으로 널리 이해하죠.”
한국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한국과 독일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면서 분단국가라는 아픔을 겪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친숙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한국은 제가 다녀 본 아시아 국가 중에 가장 글로벌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요. 지적이면서도 때론 매우 감성적인 부분이 독일의 현대미술과 많이 닮아 있기도 하고요. 한국의 미술 교육 시스템도 그렇고, 많은 작가들이 해외 유학을 경험했기 때문에 국제적인 감각과 분위기를 상당히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요.” 2007년 에르메스코리아미술상의 심사를 맡은 바 있는 그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한국 미술계의 현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었다. 
그는 1991년 마르쿠스 슈나이더와 함께 베를린에 루카스앤호프만갤러리를 열어 큐레이터로 데뷔했다. “처음 갤러리를 오픈하고 전시를 기획했을 때만해도 지금처럼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지 않았어요. 주변의 친한 작가들과 ‘좋은 쇼를 보여주자’고 시작한 것이죠.” 당시 그가 기획한 전시에 참여한 올라퍼 엘리아슨, 카스텐 횔러, 카이 알트호프와 같은 작가들은 현재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 후 슈투트가르트미술관, 프랑크푸르트미술센터, 쾰른 유러피안미술관 등 독일 유수의 예술기관의 디렉터를 역임하며 수많은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샤프하우젠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로테르담의 현대미술센터 비트드비드(Witte de With) 디렉터를 맡고 있다. 비트드비드는 유럽의 미술기관 중에서도 개방적이고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로 유명하다. 네덜란드 현지인이 디렉터를 역임한 적이 없고, 팀원들도 다양한 국가에서 온 글로벌한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디렉터 재임 기간이 최대 6년으로 정해져 있어 2006년부터 비트드비드에 몸 담았던 샤프하우젠은 2011년에 임기를 마친다. 그는 현재 오프라인 전시뿐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비트드비드 웹사이트(www.wdw-morality.nl)에서 진행되는 웹 프로젝트 <Morality>가 바로 그것이다. 오프라인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 온라인상에서 예술과 윤리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만들어 낸다는 취지로, 일종의 온라인 토론장인 ‘웹 플랫폼’이라는 명칭을 만들었다.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윤리(Morality)’에 관한 질문에 대해 글 사진 동영상 등으로 다양한 피드백을 줄 수 있다. ‘윤리’에 관한 어떠한 해답이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전 세계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입장과 해석을 모아 공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프로젝트다. 이는 올해 미디어시티서울의 주제 〈신뢰(Trust)〉와도 개념과 접근 방식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시티서울의 웹사이트(www.mediacityseoul.org) 역시 <Morality>를 프로그래밍한 디자이너 리차드 버그너(Richard Vigner)와 협업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유사한 웹 플랫폼에서 출발하고 있다.


‘차가운’ 미디어를 다루는 뜨거운 열정의 큐레이터
2000년 출범 이후 10년을 맞이한 미디어시티서울은 지난 5회의 비엔날레를 정리하고 미디어에 대한 총체적인 개념을 재고하는 시점으로 삼았다. 전시 주제인 〈신뢰〉는 끊임없는 매체의 발달로 현실과 허구의 간극이 무의미해진 현대사회에서 개인과 타인에 대한 믿음과 의심의 여지를 모순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미디어시티서울을 같이 준비하고 있는 큐레이터들의 공통점은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형식적인 측면보다, 전시의 주제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제 스스로도 ‘미디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1990년대 이후 ‘미디어아트’는 가장 트렌디한 미술의 상징이었죠. 그러나 지난 10년간 미디어아트의 발전을 지켜 보면서 발견한 것은 미디어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개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터넷과 같은 뉴미디어는 예술가를 위한 하나의 소재이자 도구일 뿐이죠. 이제 우리는 미디어에 대한 환상을 깨고 전혀 새로운 맥락으로 이해해야 할 시기에 와 있습니다.”
샤프하우젠은 이번 미디어시티서울에 주디 라둘, 에릭 반 리스하우트, 더글라스 고든, 사라 모리스와 같이 미디어의 비주얼적인 측면보다도 정치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면서 소통의 방식을 모색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힘주어 말했다. “예술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회적인 역할입니다.” ‘차가운’ 미디어아트를 다루는 샤프하우젠에게서 ‘뜨거운’ 피가 흐르는 큐레이터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2010.6.아트인컬처

by missk | 2010/06/25 18:54 | ARTICLE | 트랙백 | 덧글(0)

작가의 방

 
안성에 있는 이승조 선생님의 작업실에 다녀왔습니다. 촬영을 위해 고이 싸두었던 유품들을 하나하나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보니 마치 잠시 자리를 비우신 것 같은 익숙한 온기가 전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던 전시입니다. 6월에는 아무래도 광화문에 자주 들르게 될 것 같습니다.
 

by missk | 2010/05/28 00:07 | ART | 트랙백 | 덧글(0)

핑키

워낙에 분홍색을 좋아하지만 요새 들어 더 좋습니다. 동방의 요괴들 발대식의 드레스코드도 분홍이었죠. 베스트드레서 상을 겨냥해 분홍색 자전거를 가지고 오신 요괴님, 서둘러 마무리하느라 미처 시상하지 못했었지요. 한남동에 오시면 맛있는 밥과 분홍색 찻집에서 시원한 냉커피 쏘겠습니담.

by missk | 2010/04/29 00:05 | ART | 트랙백 | 덧글(0)

지금 당신은 충분히 행복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라는 컨셉을 내세운 이너프살롱입니다.
그림집 우흥제 대표가 광흥창역 근처에 새로운 공간을 냈습니다.

행복을 마구 뿜어내는 노란 벽과 오래된 LP 선인장 기타...
그리고 갓 씻은 딸기까지

인터뷰 and 인터뷰 and 인터뷰로 이어지는 살인적인 스케줄,
그 짬에서 잠시나마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너프살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5월호 특집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by missk | 2010/04/28 22:06 | ART | 트랙백 | 덧글(2)

[에디터스 초이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뭔가 말해줘요. 내 기분이 좋아질 만한 것.

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얼마만큼 좋아?

봄철의 곰만큼.

봄철의 곰?

봄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같이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똘망똘망한 새끼 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하겠어요? 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 곰은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
 -무라카미 하루키《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중에서


저런 위로의 말이라면 기분이 좋아지다 못해 공중부양이라도 할 수 있을 만큼 기뻐 날아오를 것 같습니다. 하루키는 정말이지 여자의 마음을 찌르르하게 하는 마법같은 어법의 소유자입니다. 1987년에 발표된 《상실의 시대》가 20년이 넘도록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며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세월을 관통하는 달콤말랑한 그의 말재주 때문일 것입니다. 이 소설은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로 주인공 와타나베가 20살이 되는 시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와타나베는 레코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생식당에서 《위대한 게츠비》를 읽으며 느슨한 오후를 보내고 자기 전 맥주를 마시며 모차르트를 듣고 첫사랑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매일 ‘태엽을 감는 듯 한’ 생활을 하는 대학생입니다. 그는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신비주의 나오코와 살아 있는 피가 흐르는 미도리 사이에서 상실의 아픔과 젊음의 치유를 반복하며 성장합니다.
《상실의 시대》는 20대의 바이블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죽음, 불확실한 미래, 현실에 부딪히는 이상, 그리고 서툴기만한 사랑. 화려하기 때문에 슬펐던 20대의 고민과 외로움을 하루키는 ‘봄날의 곰’처럼 부드럽게 다독여 주었죠. 그런 《상실의 시대》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기쁨과 염려가 동시에 밀려옵니다. 현재 <그린 파파야 향기>(1993)의 트란 안 홍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한창 촬영 중입니다. 영화는 올 가을 개봉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하루키의 소설이 영화화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5년에 개봉한 <토니 타키타니>는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배경으로 하루키 특유의 정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잘 담아냈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80년에 개봉한 흑백영화 <바람의 노래를 들어> 역시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김래원의 풋풋한 교복차림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 <청춘>은 《상실의 시대》의 오마주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루키적인 요소들이 영화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특히 공중전화기 밖으로 들려오는 배두나(아마도 미도리 역)의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대사는 소설의 엔딩과 의심할 여지없이 똑같습니다. 90년대 중반 “노르웨이의 숲에 가보셨나요”라는 카피를 유행시킨 모 휴대폰 광고속의 여자 모델의 손에도 《상실의 시대》가 들려 있었죠. 《노르웨이의 숲》은 소설의 원제로, 1989년 국내 정서에 맞게 현재의 제목으로 바뀐 후에야 비로소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하네요.

제법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지니 역시 봄은 봄인가 봅니다. 오늘 ‘벨벳같이’ 포근한 들판위에서 ‘반년쯤 냉장고에 있었던 것처럼 냉장이 잘된’ 맥주 한 캔과 하루키가 사랑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도 좋을 것 같네요.

2010. 4.아트와

by missk | 2010/04/05 18:54 | ARTICLE | 트랙백 | 덧글(0)

[아티스트인코리아] 파렌틴 오렌리

 

전시장을 들어서자 거울을 벽에 오려 붙여 쓴 시가 보인다. 반사되는 빛 때문에 글을 한 눈에 읽기가 어렵다. 가까이 다가서자 작품 앞에 바짝 다가선 나의 모습이 비친다. 뿐만 아니라 맞은 편 벽에 걸린 건조한 표정을 한, 개의 모습도 함께 비춘다. 그리고 그 옆에 서툴게 적혀 있는 한 문장. “오늘 날의 선진국이란 국민들이 수돗물을 먹을 수 있는 나라.”

대학로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열린 파렌틴 오렌리(Farettin Orenli)의 전시 모습이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는 다소 야박한 가사의 ‘빈대떡 신사’가 전시장에 흐르는데, 그것이 묘하게도 잘 들어맞는다. 곡 선택은 어떻게 했느냐고 묻자, 그는 한국에 와서 ‘돈’에 관련된 곡을 주변인들에게 추천 받았다고 설명했다. 교양 있는 왈츠나 분위기 잡는 재즈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선택이었다. 작가는 현대인들이 늘어놓는 수많은 변명 중에 하나인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입니다. 많은 도시를 가보았지만 어딜 가도 비슷비슷한 작품이 걸려 있죠. 나는 도시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작품에 반영하고 싶어요.” 터키에서 태어나고 현재는 네덜란드와 여러 국가들을 오가며 작업을 하는 파렌틴 오렌리는 사진 드로잉 페인팅 영상 설치 시 소설 등 장르간의 구분을 와해하며 자유롭게 작품을 구사한다. 전시 제목이기도 <오늘의 변명>은 이스탄불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곰의 훈련 장면을 드로잉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작가의 눈에 비친 곰의 모습은 돈과 권력의 장단에 휘둘리는 ‘민중’의 모습과 다름 아니었다. “곰을 춤추게 하기 위해서 조련사는 곰을 뜨거운 접시 위에 올려놓고 뜨거워서 펄쩍 뛸 때마다 북을 칩니다. 북소리에 익숙하게 된 곰은 결국 접시가 없어도 북소리만 나면 저절로 춤을 추게 되죠.”

전시장 한 벽면을 차지하는, 거울로 쓴 시의 제목 <아나티스트> 역시 ‘현대화’로 포장된 사회의 이면을 꼬집는다. 그는 모든 정치적인 조직과 권력을 부정하는 아나키스트와 아티스트, 두 단어를 합쳐 ‘아나티스트(anartist)’로 부른다. 그것은 스스로를 지칭하는 예술가(an artist)를 뜻하지만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그의 해석을 담고 있기도 하다. 작가가 쓴 영시 <아나티스트>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매 세기마다 한 사람이 벽면에 문을 그린다. 그리고 그 바보는 닫는 것을 잊어버렸을까.”

시각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로서 시대가 가진 문제를 아름답게 가려줄 수도, 적나라하게 폭로할 수도 있다. 그 선택의 문제는 모든 작가들에게 맡겨진 숙제가 아닐까.

2010.4.아트인컬처

by missk | 2010/04/05 18:53 | ARTICLE | 트랙백 | 덧글(0)

[아티스트인코리아] 유타카 이나가와

 
거미 모양의 쥬서기, 입술 모양의 소파, 달걀 모양의 의자……. 우리의 일상을 둘러 싼 디자인은 놀랍도록 진화하고 있다. 식물 동물 음식 신체 등 익숙한 소재로부터 온 새로운 경향의 디자인은 초현실주의자들의 데페이즈망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아이디어로 현대인들을 매료시킨다. 유타카 이나가와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이 작가는 22세기에서 온 것이 분명해’ 라고 말이다.

주전가인가? 아니면 확성기? 그것도 아니면 버섯? 눈과 머리를 혼란케 하는 드로잉을 좇다보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그 출발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그의 작품은 복잡하다.

“제 작품이 추상화 같다고들 해요. 그렇지만 이미지는 분명 실제 존재하는 사물로부터 온 것이죠. 그리고 이미지를 생물학적 요소들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죠.”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게 하는 사물들이 제멋대로 교차하며 오히려 우리의 눈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작가는 주변에서 눈에 띄는 온갖 사물들을 사진으로 찍고 그 이미지를 컴퓨터로 다양하게 합성한다. 물고기와 가로등, 브로콜리와 렌치, 염소와 수도꼭지의 절묘한 만남은 기막히도록 기상천외한 모양을 만들어낸다.

도쿄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으로 건너가 올해로 9년째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작가가 바라본 세상의 모습이 과연 이러했을까? 조용하고 정교한 일본과 다문화가 뒤엉켜있는 런던, 이 두 공간의 간극은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겪었을 그에게 혼란함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을지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도시의 리듬에 따라 현대인의 삶 역시 빠르기를 강요당하고, 주위의 이미지와 사물들은 익숙해지기도 전에 새것으로 교체된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정신적 공황상태는 유타카의 드로잉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벽면을 가득 메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마주하고 있으면 시간과 공간의 모든 물리적인 제약을 넘어 전혀 낯선 곳에서 부유하고 있는 자신의 상상력을 발견하게 된다. 회화 드로잉 사진 애니메이션 심지어 티셔츠에 자신의 작품을 프린트하는 상업성까지. 파인아트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는 진정 21세기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포스를 지닌 미래소년임이 분명하다.

2009.12.아트인컬처





by missk | 2010/04/05 18:46 | ARTICLE | 트랙백 | 덧글(0)

[아티스트인코리아] 제임스 라일리

 
영국 yBa 작가 제임스 라일리(James Rielly)가 한국을 방문했다. 국내에서 갖는 첫 개인전을 위해서이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지역에서 갖는 첫 전시다. 수도승처럼 짧게 깎은 머리와 화려하지 않은 단정한 차림, 그리고 차분한 말투를 가진 작가는 한국의 분위기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 역시 그러하다. 수채화처럼 산뜻한 색감, 붓의 흔적을 드러내는 가벼운 질감, 단순하고 위트 있는 이미지. 제임스 라일리의 작품은 복잡한 미학적 개념과 과중한 의미를 유보하고 산뜻하고 담백하다. 그의 작품과의 첫 만남은 마치 편지지 한 모퉁이에 그려진 귀여운 그림을 발견했을 때처럼 들뜨고 유쾌했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 누워 있는 세 아이의 얼굴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의식이 없는 상태 같기도 하다. 옆으로 돌아선 아이의 얼굴에는 피노키오 같은 빨간 코가 솟아나있고, 인형 분장을 하고 있는 두 인물은 누가 아이이고 어른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둘 다 아이일수도 있고, 어른일수도 있죠.” 작가는 스치듯이 가볍게 대답한다. 제임스 라일리는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신문이나 잡지 인터넷 등 대중매체에서 이미지를 스크리닝한다. 그 다음 특정 기사나 내러티브와 연관된 이미지들을 우선 작게 그려보고 관련된 글들을 적어본다. 그리고 좋은 이미지들을 선택해 작품으로 제작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포스’를 지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무겁고 심각하지 않게 냉소적인 비판을 가하는 영국식 블랙 유머가 녹아든 회화인 셈이다.

제임스 라일리의 작품에는 그가 숨겨놓은 몇 가지 수수께끼들이 숨겨져 있다. 우선 작가는 제목을 통해 그 힌트를 제공한다. 1960년대 활동한 영국의 유명 듀엣 코미디언 어니 와이즈(Ernie Wise)와 에릭 모어캠(Eric Morecambe)을 그린 <Wise One>은 성(姓)이면서 동시에 현명함을 의미하는 'Wise'를 제목으로 취함으로서, 두 듀엣 코미디언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있다. <술 취한 엄마>(Drunk Mum) <더 이상 박스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We are going to not Live in a Box any more) <살인도 즐거울 수 있다>(Killing can be Fun)와 같은 의미심장한 제목을 단 작품들은 알코올 중독, 노숙, 살인, 전쟁 등 정치사회적인 이슈들과 관련을 맺으며 제목은 작품을 읽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러나 작가는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정치는 흑과 백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죠. 그러나 저는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고 싶지 않아요. 항상 ‘중간에 난 길’로 걷고 싶습니다.” 작가가 말한 ‘중도(中道)’ 개념은 불교의 중요한 도리 중 하나라고 설명하자 그는 달라이 라마의 강의를 몇 번씩 찾아다니며 들었을 만큼 불교에 심취해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삶의 과정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사를 즐겁고 유쾌하게 사고하는 달라이 라마의 유머러스한 대처 방식에 매료되었어요. 저는 제 스스로 작품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 보는 사람들도 제 작품을 가볍게 볼 수 있길 원해요. 무겁고 심각하지 않게, ‘유머’가 있는 작업을 합니다.”

제임스 라일리의 작품은 언뜻 보아서 가볍다. 어린 아이들이 그려놓은 알록달록한 그림 같기도 하고, 엽서나 동화책에 실린 삽화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작품 속의 인물들은 현대사회의 불균형과 모순 속에서 상처받은 현대인들의 슬픈 초상이다. 이들의 불안한 시선에서 잔잔한 동정과 애틋함이 밀려온다.

2009.11.아트인컬처

by missk | 2010/04/05 18:44 | ARTICLE | 트랙백 | 덧글(0)

[리뷰] 공시네展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


2007
년 서울 아라리오 갤러리 개인전 이후 2년 만에 공시네가 개인전을 갖는다.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1, 2층을 그간의 신작들로 가득 메웠다. 약 1년간 인적이 드문 제주도의 작업실에서 철저하게 자연과 마주함으로 빚어낸 결과물들이다. 전시장은 제주도의 푸른 하늘, 나지막한 파도 소리, 쾌청한 공기까지도 코끝에 와 닿는 듯 시공을 뛰어넘어 감각적이다.

자연은 인간의 위대한 스승이라고 했던가. 대(大)스승과 함께 거처한 탓인지 그녀의 작업은 이전 작업에 비해 한층 성숙된 느낌이다. 하늘, 구름, 바다, 꽃, 말과 같은 자연적 소재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작품의 모티브를 찾는 작가의 방식 때문일 터. 때문에 작품은 보다 경쾌하고 밝아진 느낌이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의미는 오히려 한 층 더 진지하고 심오해졌다. 전시장 2층 한 벽면 모서리에 설치된 <choo-choo>은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담겨있는 작업이다. 네 개의 철로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하얀 꽃나무들은 제주도의 파란 하늘과 닿아있다. 네(四)개라는 숫자는 죽음(死)과 연결된다. 작가는 우연히 멈춰 선 기차의 창밖으로 환하게 핀 꽃나무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달리고 있는 기차와 그 사이에 핀 꽃나무의 관계를 삶과 죽음의 관계로 인식한다.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고 그 상처를 안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는 삶과 죽음이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우리는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작가는 인간의 내적인 고민과 갈등을 작가와 작품의 관계가 아닌 인간과 자연의 입장으로 스스럼없이 조우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치유하고 순환하는 자연의 가르침으로 풀어낸다. 자연의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여유롭고도 평화롭다.

작가는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사물들의 무수한 순간들을 드로잉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축적된 수권의 드로잉 북을 들여다보고 그 순간의 감정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리고 머릿속에 설정된 사물들의 관계를 실제 오브제로 빚어낸다. 작가는 소위 말하는 필이 꽂혀 작업을 하는 순간의 감정에 집착하는 작가는 아니다. 일상을 무심한 듯 기록하고 그 기억의 파편을 다시 대면했을 때 시간을 건너 잊었던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기도 하다. 그리고 각각의 사물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감정 이입’의 과정을 통해 예상치 못한 소통을 시도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마치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작가는 영화감독처럼 배우들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들의 관계와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또 그것을 가장 극적인 효과로 담아내기 위한 장치로 무대를 설정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조명. 빛과 어둠의 설정이다. 빛과 어둠은 2차원의 평면과 3차원의 오브제를 구분해 주기도 장치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을 향한 목적은 아니다. 일상적인 사물들이 다시 작가의 손에 의해 재창조되고 무대 위에 올라 조명을 받아 새로운 관계를 형성했을 때, 그것은 이미 내가 마주했던 사물이 아는 전혀 다른 대상이 된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가장 몰입하는 순간인 페인팅 작업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빛과 어둠 자연과 인간 치유와 상처와 같은 양가적 의미의 공존은 공시네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시리즈 <yestoday>는 언어적 유희적 통해 지난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작가의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 예스터데이(yestoday)는 지난날(yesterday)이 아니다. 바로 오늘 그 지난날을 끄집어내어 ‘지난 상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또 다시 지나갈 거야.’ 라며 토닥이며 위로하는 듯하다. 앞과 뒤가 핸들로만 이루어진 달리지 못하는 자전거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커다란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망설인다. 반면 나무는 태양과 대지로부터 영양분소를 공급받아 말없이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는다. 공시네는 인간의 끊임없는 내적 갈등을 자연으로부터 치유 받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명상, 치유, 그리고 어머니와 같은 절대적 위로의 존재와 같다.

2009.4.아트인컬처

by missk | 2010/04/05 18:37 | ARTICL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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